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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03 09:16
   형제사랑, 손님대접, 음행, 돈 - 히브리서 67강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127  


(13:1-6)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갑자기 여태까지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징계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내신다. 이렇게 쭉 멜기세 반차를 좇은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해놓고 갑자기 13장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이렇게 나오죠? 여기에서 그렇게 인간들의 행위를 강조하는, 그런 내용이 나와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죠? 그럼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일까?

보세요. 여기 보면은 사랑하세요, 그러구 용서하세요, 그러구 나그네를 대접하세요, 그러죠? 그럼 이게 누가 거예요? 하나님이,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냈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잖아요. 당신의 뜻, 아가페, 이게 존재적 기능이란 말이에요? 그 아가페, 당신을 담아서 아들의, 아들 안에 담아서 우리에게 보낸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랑, 말씀을 받아 들이게 될  그걸 우리가 '사랑 받았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을 받았어요. 우리가 사랑 받았고, 하나님이 먼저 사랑했다, 그래요. 요한 일서에 보면은. 사랑 받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거잖아요. 용서라는 게 창조의 개념이에요. 뭐 죄를 짓고 그래서 죽어야 할 자들인데 그 죄를 짓고 죽어야 할 자라는 게 제가 '예수 밖'이라는, '은혜 밖' 이라는 개념이고 거기에서 '예수 안'으로 끌어들이는 걸 창조라고 하는데 '없음'이니까, 그죠?  '창조'라고 하는데, 그걸 '용서' 라는 단어로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뿐 이라구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셔요. '창조'하신 거란 말이에요. 왜? 용서하지 않으면, 창조하지 않으면 예수 밖의 없음이니까 먼지니까, 그죠? 용서가 내게 내려와야 우리에게 음 창조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보고 누구를 '용서하라' 라는 말은 너희들 가 갖구 니들이 그냥 용서의 권세를 내가 줬으니까 가서 사람을 용서하고 다녀라 이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후~'하고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그러죠. 성령을 받아라 그래 놓구 뭐라 그러냐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래요. 근데 그 평강이 뭐라 그랬어요? 제가. 성전을 완성했을  쓰는 단어가 솨람~, 샬롬, 평강이에요. 완성되다. 이제는 완성했다, 내가. 가라~, 그래요.

가라~그래 놓고 뭐라 그러냐  '너희들이 용서하는 자는 하늘도 용서하고 너희들이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요. 그 말은 용서하시는 권세를 줬다는 말이 아니라 그 용서가 무엇인지를 내가 너희들 마음에 두어서 이제, 너희들의 삶으로 입으로 그 은혜, 십자가 구원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살게 할 것인데 내가 완성해 놓은 샬롬, 완성해 놓은 자들은 그걸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용서한다. 어! 나는 용서받은 거구나~! 그걸 전해 주는 거지요? 그게 '용서'한다는 뜻이에요. 근데 선택을 받지 못해서 귀가 막힌 이들은  알아 듣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못 받는 거예요. 그것이.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용서할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아니라,  바꿔서 말하면 권세가 주어진 거나 마찬가지죠. 왜? 말씀이 들어왔으니깐요. 그리고 그걸 전할 수 있게 해서 그 내가 통로가 되고 통로가 되어서 말씀, 예수가 전해졌을 때 그걸 또 누군가 듣고 받아들이는 게 내가 '용서'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용서를 전해주는 거란 말입니다. 내가 용서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는 건 여러분을 '사랑' 하는 거고 말씀을, 사랑을 던지는 '용서' 하는 거예요, 그죠? 용서를 전하는 거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창조하셨어요, 사랑하셨어요, 용서하셨어요."

나그네를 대접한 것도 마태복음 7장에서 뭐라 그래요?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대접받기 위해 먼저 대접했다  단어 똑같은 단어거든요? 어떻게 대접 했냐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 율법을 완료하시면서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라고 완료하시므로 우리를 '대접' 했잖아요? 우리가 나그네라면서요, 그죠. 나그네를 대접한 분이 누구예요? 예수란 말이에.

그러니까 나그네를 대접한 예수를 전해주는 .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는  아세요?' 라고 전해주는 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거란 말이에.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그냥 대접해 가지구 뭐 혹시 그 중에 하나 예수가 있으면 오케이 없어두 이건, 이런 아니란 말이에요.

나그네 대접이라는 여기서 이제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아브라함과  이겠죠? 부지 중에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당시 고대시대 때는 나그네라는 한번 지나가면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나그네를 대접한다 라는 것 자체가 내가 부정되는 거예요. 내 유익과 그런 것들은 다 부정이 되고 내 손실을, 손해, 무조건 손해예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건 고대시대 때는.  나가는 거고 내가 불편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롯과 아브라함이 어떻게 나그네를 대접했어요? 나그네가 찾아간 거란 말이에요,  집에. 그 양반들이 뭐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나그네가 찾아가서 그 나그네를 영접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그 중에 하나가 누구예요? 여호와~, 여호와의 사자, 예수입니다. 예수. 그러니까 예수님이 찾아가서 먼저 그들에게 대접을 해줘요. 믿음을 심어주면, 그들이 예수님을 '대접' 하는 거예요. 그게 나그네 대접이.

음행이라는 , 혼인이라는 ,  이야기도 뭐냐 ? 하나님과 혼인을 한 이들이, 예수님 보세요. 우리가 아담이 하와를 있게 할 때에 그게 이제 묵시 속에서 일어난 일을 모형 해서 베레쉬트 하는 거잖아요?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내가 된 거잖아요. 응?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한 것처럼. 근데 우리는 고멜 같은 인간들이  역사 속에서. 그런데 그런 아내는 버려야죠?  번이나~, 그죠? 근데 고멜 같은 우리를 신랑이 끝까지  버린 음행   거예요. 그러니까 음행을 안  거는 예수예요. 

이혼하지 말라. 이 말은 뭐냐  예수님이 우리와 , 천 번 이혼해야 마땅한데 예수님이 이혼 안 했단 뜻이지, 우리에게 너네들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어. 이 얘기가 아니란 말이에. 그러니까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대접하고 음행 하지 않고 사랑했고 용서했고 거예요. 그걸 갖다가 우리가 이해를 하고~ "아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일어났구나!" 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음행 하지 않는 거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거요~, 용서하는 거요~, 사랑하는 거요~, 그런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은 7절 보세요. 6절 보세요. 아니 5절~.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이 들어가 있겠어요? 여기에. '이거 해야 돼~' 이게 끝이라면 이 말이 여기 들어가면 안되죠. 니네 들이 이걸 법으로 받아서 법으로 지켜낼려고 하면 그게 죄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징계, 자식 만들기 그 과정을 통과 시키면서 예수가 너희에게 행한 진짜 섬김, 진짜 사랑, 진짜 용서를 할 수 있게 만들겠다라는 거예요. 말씀을 전하게 예수를 나타내는 빛으로 살게 만들어 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면 곰방 이걸 법으로 받아 들여요. 율법으로 받아 들인다니까요? 그래서 '해 봐야지? 할까?'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먼저 이걸 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를 너무 기특하게 생각하게 돼요. 그래 놓고는 진짜 예수의 사랑과 섬김과 나그네 대접과 용서를 자꾸 잊어버린다니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걸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일단 법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법을,  법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진짜 있는가를 경험하게 주신 다음에 결국은 '아니지? 니들은 예수 믿어야 되는 거지?' 니들이 뭘 하라는  아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행위를 믿으라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는.

근데~ 그걸 믿게 되면 그렇게 그런 세상의 그 어떤 짐들 있잖아요? 그런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돼요. 그냥 내가 마음속에 꼭! 붙들고 있던, 요런 것들~ 내 마음이 가 있는, 그런 것들이 많을수록 그게 나에게 짐이 되잖아요. 자식에게 내 마음이 가 있으면 그게 생명이 되고, 돈에 마음이 있으면 그게 생명이 되고,  명예나 자존심 이런 생명이 되고,  나의 업적과 공로. 왜 목사들이 교회를 그렇게 키울려고 그래요? 여러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겠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부터 사실 하나님이 마음을 끊어내 주시는 것이, 그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멍에예요, 멍에.

왜냐면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살았거든. 하늘의 모든 권세를 다 차압 당하는 삶을 사시고는 결국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냥 완전히 죽어 버리는 삶을 사셨단 말이에요. 근데 그게 그게 진짜 하나님 아들의 삶이다  보여주는 십자가 이후에 하나님이 진짜로 그를 살려버리는, 그죠?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래 놓구 뭐라 그러냐  너희 마음이 쉼을 얻고 라고 이야기를 해요.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건 '니들 마음이 가 있는 그것들을 내가 끊어준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멍에라고 하는 거예요. 왜? 예수님 그때 당시의 멍에는 둘이 같이 지는 멍에 거든요, 항상 소가. 그러니까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처럼 젖 내놓는 암소처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멍에를 너와 같이 지고 내가 끌고 가겠다는 뜻이란 이에, 그게. 그럼 그게 짐이 더 무거울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래야 짐이 가볍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짐은 쉽고 가벼우니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그게 진짜 쉬는 삶이고 그게 진짜 자유에 이르는 삶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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