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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6 08:53
   36. 교회(4) - 교회의 본무(本務) (I) 교회, 거룩을 향하여 가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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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3,530  


(살전4:3-8)
3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 해야 합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또는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는 '자기 몸을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6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형제자매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에도 말하고 경고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난 시간에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늘에 속한 자들답게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즉, 이 땅에서의 교회의 본무(本務)는 무엇인가에 대해 오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부터 복습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하나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삼위 하나님께서 충만한 거룩과 기쁨과 안식 속에 거하시던 곳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우주는 모두 불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역시 하나님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창조 전의 하나님 나라와 사뭇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바로 교회가 그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충만한 거룩과 기쁨과 안식 속에 존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충만한 거룩과 기쁨과 안식을 어떤 한 무리와 공유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는 어떤 것을 계획하셨다면 곧 그것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그냥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서 “뿅”하고 넣으시면 될 것을 왜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시간이라는 것을 두셨으며 역사를 경륜해 가실까요?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꼭 이 광야의 시간을 지나가야 할까요? 어차피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적지는 그 충만한 기쁨과 안식이 있는 하나님 나라인데 왜 찰나에 불과한 이 광야를 꼭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거룩”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배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의 이 땅에서의 유일한 해야 할 일은“자신들의 거룩”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머릿수를 세지요? 그래서 민수기(numbers)입니다. 처음에 애굽에서 몇 명이 나왔다고 합니까? 장정만 60만 명, 그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광야에서 다 죽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마지막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새로운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는데 몇 명입니까? 60만 명입니다. 즉 우리의 인생, 교회의 인생에서는 반드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어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거룩을 배우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를 의의 흰옷을 입은 요한 계시록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이 역사에 던져 넣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에덴에서 벌거벗고 사는 인간들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계시록 21장22장의 그 의의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사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에덴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에덴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시려고 했는데 인간들 때문에 실패해서 또 다른 방법들을 동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창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는 이 땅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지어져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골1:21-22) 21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신 목적은 우리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살 자들이기 때문에 그 거룩함, 온전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역사에 던져 넣으셔서 성화의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 성화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의 거룩을 요구하고 계시고 훈련하라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거룩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수준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
 
(엡4: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거룩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금방 성인이 될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그들을 가리켜 ‘신자다, 성도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씁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떤 문제 속에 있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근친상간을 했고 우상을 섬겼고 분파를 이루어 싸웠고 은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신자다, 성도다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 가는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업적을 쌓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소홀히 할 때,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이나 인격에 미달 될 때는 경고를 하십니다.
 
(히5:12-13) 12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다시금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린 아기이므로, 옳은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은 햇수가지고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젖 먹는 수준에 머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 말씀인지 분별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이 땅에서 그렇게 거룩을 향해 자라 가는 것을 본질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이 땅에서 무언가 큰 업적을 이루어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서 하나님의 점수를 따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구원도 우리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께 점수를 얻어야 가능한 것인 양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단이라 합니다.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손상시키는 교리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7:13-15)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15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 구절은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이 구절을 대면서 “봐라, 우리가 이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눅13:23-24)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좁은 문은 들어가기를 힘써도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약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일까요?
 
(요10:7-10) 7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8    나보다 앞에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여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그 우리가 들어가야 할 좁은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은 노력해서 열심히 업적을 쌓아서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힘써 노력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선물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이단 중의 이단인 것입니다.
 
(엡2:8-9) 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 교회의 자격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착각을 하느냐 하면 우리는 뭔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을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이므로 이제 뭔가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달라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죄인이었는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은혜가 우리를 뚫고 들어와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으로서 거룩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기 때문에 불러낸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오해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죄인들인 애굽 사람들과 다른 선민이라 생각했습니다. 선민인 자기들이 죄인들인 애굽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인들인 자기들을 불러내셨다고 착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이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수효가 적은 연고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불러내셔서 교회를 설명하실 수도 있었고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교회를 설명하실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의인이었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시내 산으로 먼저 데리고 가셨겠습니까?
 
왜 거기서 율법을 주셨지요? ‘너희는 이제 구원받은 자들이므로 거룩하게 살아라.‘ 하고 거룩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의 유일한 본무(本務)는 거룩하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에서 공부한 것처럼 우리를,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수님이라는 머리에다가 몸으로 붙여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피가 통하고 한 영으로 묶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면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발이 묶일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나온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만 격발케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읽으면서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열매를 따느냐 는 것입니다. 참 훌륭한 겸손 같지만 그것이 바로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원죄의 정체 아닙니까? 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내 체면상 거저는 못 받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론 첫 시간에 살펴 본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세요. 베드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우리가 구원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뭔가 자기들도 할 것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신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꾸짖은 것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이라고 호통을 치시고 뭐라 하십니까?
 
(마16: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에 예수께서 오실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행위 같은 것은 “혼이 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행위는 아니란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느냐?
 
마16장24절에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즉 신앙이라는 것은 Doing의 문제가 아니라 Being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나를 위한답시고 십자가를 가로막고 서는 행위를 하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 내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 교회의 목표요 책임이요 본질은 바로 성품과 인격에 관한 것이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는 “유대인 나쁜 놈들, 내가 그 때 있었다면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했던 그 놈 들과 목숨 걸고 싸웠을 텐데” 내가 나의 생각으로 예수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그게 베드로라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도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을 이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무슨 업적 쌓는 것 아닙니다.
 
(마7:21-23)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 “선지자 노릇한 것과 귀신 쫓아낸 것, 그리고 수많은 권능을 행한 것”이런 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뭡니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 즉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로 하여 나온 행위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나온 행위가 아닌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 다 집은 지었습니다. 오히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더 훌륭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이 우주가 불 탈 때 함께 불에 타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어디서 근거하여 나온 행위냐에 따라 그 결과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것입니다.
 
(빌2:1-8)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어떠한 격려나, 사랑의 어떠한 위로나, 성령의 어떠한 교제나, 어떠한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3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또는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6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말씀 5절부터의 내용은 너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신 그 예수의 마음으로 겸손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할 때입니까? 너희가 사랑을 하고 긍휼을 베풀고 권면을 하고, 교제를 하고 자비를 베풀고 할 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착한 일을 할 때 , 착한 일 했다고 거만 떨지 말고 겸손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그 행위들이 나오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너희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말씀을 하실 것이란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자기 자랑삼아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자랑을 하지요? 왜 무슨 선한 일을 할 때면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서 합니까?
왜 명품이다. 좋은 차다. 좋은 집이다. 자랑을 합니까? 자기 안에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면 적인 아름다움, 훌륭한 인격과 성품이 없으니까 다른 것으로 포장을 해서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습니다. 조금 부러워 해 주는 것 같지만 금방 자기 문제에 몰두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히려 질투나 시기를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금방 앞에서는 부러워하는 척 하다가 뒤돌아서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욕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랑으로 나오는 선한 행위들은 거룩과는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의 죽음을 보십시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고 그 모습이 천사 같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좌 우편에 서서 그를 지켜보시고 계실 정도로 그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명도 회심시키지 못하고 그냥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돌로 찍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거룩한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죽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폼 잡으려고 그런 이야기했겠습니까? 사람은 죽음 앞에서는 가장 진실해 지는 법입니다.
 
그 자리로 너희들 모두가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에 맞게 변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씩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말 한마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천사가 와서 감옥 문을 열어 주어 탈출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또 감옥에 가서 그 때는 실컷 두들겨 맞고 나옵니다. 왜, 베드로를 때리는 자들의 손목이 부러지지 않았을까요? 왜 그 때는 천사를 시켜 감옥 문을 부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 실력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실력자요? 이런 실력자요.
 
(행5:40-41) 40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 주었다.
41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의회에서 물러 나왔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예수님을 위해 매를 맞고 능욕 당할 수 있는 자로 여겨 주심을 오히려 기뻐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해 주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실력자로 변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바쁜 사도 바울을 계속 감옥에 넣고 매를 맞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이 목적이라면 그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더 할 수 있게 돈도 갖다 대 주시고 투옥도 막아주시고 하셨어야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런 것들을 막아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죽은 사람까지 살려 낼 수 있었던 그가 결국 사도행전 마지막에 로마로 묶여서 끌려가는 것으로 끝날까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해 나가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누가 가십니까?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습니까? 성령님께서 가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교라는 주제로 공부할 때 살펴 보았잖아요?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거룩이 목적이시지 그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쓰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하나님의 일은 더 활활 불이 붙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거룩을 만들어 가시면서 그 길에서 하나님의 일에 사도를 부르신 것입니다. 사도의 거룩을 위해서. 이렇게 교회의 본질, 교회의 본무는 얼마나 기독교적인 열심을 갖고 주를 위한 일을 하고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위가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두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목표이시지 우리를 이용해서 일을 시키시는 분 아니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을 이루어 가면서 순교도 하고 선교도 하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이 만들어져 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분의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6:28-29) 28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예수는 알지도 못하면서 선교다 전도다, 봉사다, 여전도 회다, 남전도 회다 이런 거 하면서 자기 자랑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만 격발케 할 뿐입니다.
 
먼저 예수를 아십시오.
예수를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가 못 견디게 감사해서 가만히 있으실 수 없거든 겸손하게 다른 지체들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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